통일의 꽃 이두화 선생을 떠나보내며

 

[기고] 이종문 (사)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 후원회 부회장

  • 이종문 
  •  
  •  입력 2022.07.2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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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애국열사 이두화 선생 추도식이 26일 오후 7시 광주 국빈장례문화윈에서 진행되었다. [사진제공-양심수후원회]
 

 

2차 송환희망 비전향장기수 이두화 선생께서 향년 95세로 운명하셨다.

애통하고, 원통하다. 얼마나 더 이런 분단의 아픔을 죽음으로 맞이해야하는 것인가?

지난 25일(월) 산화하신 ‘통일애국열사 고 이두화 선생 통일장’이 광주 국빈장례문화원에서 615공동위원회 광주본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광주전남연합, 광주민주화운동동지회, 민족자주평화통일 광주전남지역회의, 통일광장, (사)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광주진보연대, 광주전남추모연대 주최로 엄수되었다.

(사)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이종문 부회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양심수후원회]
(사)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이종문 부회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양심수후원회]
 

 

이두화 선생은 항일빨치산 혁명가의 딸이었으며,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사를 전공했던 인텔리 여성으로 여동생과 함께 정치공작원으로 파견되었다가 6.25전쟁 당시 일시적 후퇴시기 북으로 가는 길이 막혀 지리산에 입산하시어 1954년 2월에 체포되셨다.

군사재판에서 총을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되었고, 1955년 한 동지가 가방 속에 나침판을 소지하였다는 이유로 같이 연류 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다시 재판받아 광주교도소에서 3년의 옥고를 치렀다.

1958년 석방 이후 통일운동가 최장렬선생과 결혼하시였고 곡성 옥과고등학교에서 역사교사 등을 역임하셨다.

2000년 9월 비전향장기수 1차 송환에는 신청하지 않았지만 2006년 2차 송환신청은 최장렬(남편) 선생이 직접 송환을 추천하기도 하셨다.

최근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탈북자 강제 북송 얘기가 온통 언론을 통해서 나라가 시끄러운데 정작 2차 송환을 바라시는 마흔 여섯 분의 비전향장기수들이 16년 사이에 서른일곱 분이 돌아가셨다.

비전향장기수 2차 송환희망 선생들에 대한 치떨리고 잔인한 자연사 생존 고문(?)이 계속되고 있는 한, 이 땅에서 인도주의와 인권을 떠드는 것은 썩은 고목나무에서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다.

이제 이두화 선생마저 떠나보내고, 나머지 2차 송환희망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은 단 아홉 분만이 생존해 계신다. 대부분 90세, 100세를 바라보는 초고령 선생들이 창살 없는 감옥에서, 요양원과 요양병원 등지에서 그렇게 쓰러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 야만의 세월을 후대들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사)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양희철 선생(고문)이 추도시를 발표했다. [사진제공-양심수후원회]
(사)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양희철 선생(고문)이 추도시를 발표했다. [사진제공-양심수후원회]
 

 

추도시
                                           양희철 (사)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고문                      

월출산 노을
볼그레 물드리고
보네 보이네 당겨 안아라
동북의 용정 민주기지 뛰어놀던
평양의 골목과 거리
오순도순 내일의 희망을
주고받던 동무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빨치산, 곧 만나리라 했던,

아리땁던 그 시절 그 사람들
다들 어데로 갔나
지리산 회문산 백운산 산산산
조국의 통일과 영광스런 래일을 위해 
미제와 그 앞잡이의 헛개비들과 
싸웠다 쓰러져 산화했다 이름없이
고귀한 정신 나라 위해 던졌다
그렇게 가신 님을 조상했을 님!

교육자이신 아버지 가르침 받고
민주화된 가정 의견의 수렴
빨치산의 전통 생활에 평치시니
하나같이 떨쳐 일어남이여
동생 둘 다 조국수호 일선에
남동생은 15세 인민군으로
여동생은 해방지구 정치공작대로
식구 모두가 조국의 부름에 일떠섰다.

장하도다 이두화!
무엇을 바라리요. 오직 자주 앞세워
분단조국 통일만 된다면
이 한 목숨 무엇이 대수랴, 하셨던 님.

아버지의 혁명정신 이어받아
도당학교 역사교사로 일하셨을 때
근현대사는 매끄럽지 못했다고
외세의 침략과 간섭 급기야
일본제국주의 탐욕의 오점, 이어
미제의 군대 앞세우고 점령했나니
이 아니 서러우랴
이 아니 싸우지 않으랴

95세, 이두화 선생님 생을 놓으시니
고종명하셨다
호화롭진 안해도 영광된 삶이였노라.
함께 할 동지들이 있고
돌아갈 고향이 있고
조상할 이웃 친지들이 계시니
장차 보고할 이 없으리오.
의연히 물러앉아 무등은 말이 없어도
지나 온  어제 날
선악시비 다 가리어 알고 계시도다.
못내 아쉬움
2차송환, 그렇게 어려웠는가
돌아 가 나진여고 시절 동무들과
김일성 대학 역사학부 동창들 불러내고
지금의 애환 환한 추억으로
회포 풀고 싶었는데, 빨치산의 산
차거운 눈빨만이 아니라고 푸르름의 희망 엮어내는 무대였노라고
남도의 인심, 그 멋과 맛
비길 데 없이 좋은 곳 좋은 사람들이라고.
깨울 때까지 고이 잠드소서

                          2022년 7월 26일

 

2006년 2차 송환 희망자 장기구금 장기수 46명
故장광명 / 故고성화 / 故김원철 / 故김기찬 / 故민범식 / 故정순택 / 故천광섭 / 故맹기남 / 故배동준 / 故김동섭 / 故문상봉 / 故강대호 / 故김태수 / 故이학천 / 故서옥렬 / 故유영쇠 / 故허찬영 / 故김경선 / 故김종하 / 故이찬근 / 故류기진 / 故오기태(장재필) / 故서순정 / 故방장련 / 故최상원 / 故이봉로 / 故김찬호 / 故박재원 / 故김동수 / 故박창수 / 故정순덕 / 故강담 / 故박종린 / 故김상수 / 故이준원 / 故김교영 / 故이두화

 

2022년 7월 25일 현재 생존자 9명
문일승(97) / 양원진(94) / 최일헌(94) / 박정덕(93) / 박수분(93) / 김영식(90) / 양희철(89) / 박희성(88) / 이광근(78)

 
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 명예의장이 추도사를 했다. [사진제공-양심수후원회]
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 명예의장이 추도사를 했다. [사진제공-양심수후원회]
 

 

이두화 선생님 마지막 가시는 길에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 대표자, 회원들과 서울에서 함께 한 낙성대 ‘만남의 집’ 양희철 선생, 박희성 선생, 김영승 선생이 함께 했고, 범민련남측본부 이규재 명예의장, 이태형 의장등도 함께 했다.

95년 한 많은 모진 삶 뒤로하고 고인이 바라시는 북녘 땅 형제들을 살아생전 만나보지 못하고 가시는 길이 너무나 원통하고 애석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이두화 선생을 기억하는 많은 분들이 선생의 고귀한 인품과 인간애, 동지애에 대해 기억해주셨고, 못다 이룬 2차 송환의 꿈을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다짐을 함께 나눈 시간이었다.

이두화 선생이 살아오신 길을 육성증언 추모영상으로 고인을 넋을 간직하였다. [사진제공-양심수후원회]
이두화 선생이 살아오신 길을 육성증언 추모영상으로 고인을 넋을 간직하였다. [사진제공-양심수후원회]
 

추도사

선생님과 이별하는 내일은 정전협정 69돌이 되는 날입니다. 선생님이 청년 시절 통일의 꿈을 안고 남으로 온 지도 72년, 그 긴 세월의 지난한 투쟁에도 남북관계가 단절된 채 선생을 떠나보내게 돼 원통한 마음입니다. 평생 통일조국을 염원하며 꿈에도 가족들을 그리던 선생님을 또 한 분 놓치고 맙니다.

선생님 살던 곳은 평양특별시 서구 기림1리. 모란봉 기자림 건너고 집에서는 을밀대도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1901년생으로 법 헌에 나갈 적자를 쓰는 이헌적, 어머니는 두터울 후에 남녘 남을 쓰는 한후남. 큰오빠는 이득재, 작은오빠 이광재는 외무성에서 일했습니다. 여동생은 이월화, 남동생은 이양재, 잊을 수도 없는 이름들, 잊혀지지 않는 그곳을 향해 평생을 해바라기 하셨습니다.

2000년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송환될 때는 남편을 두고 차마 갈 수 없어 신청을 미루셨지만 2006년 2차송환 신청자 명단에는 최장렬 선생이 앞장서서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고도 참 희망 고문이 많았습니다. 남북의 시계가 가까워진 듯하다가 다시 속절없이 후퇴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 남북대결 구도를 부추기고 있으니 말입니다.

선생님은 김일성대학 3학년 때 전쟁이 일어났고 정치공작대로 자원하여 1950년 7월 28일 평양역에서 기차를 타고 남으로 오시게 됩니다. 같은 대학 화학학부 2학년생이던 여동생 월화는 전북으로 선생은 전남 무안으로 갈라져 헤어진 후 생사조차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해 9월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막히자 11월 백운산 입산, 도당학교에서 강의를 1953년까지 지속하였습니다. 이때 천식이 시작되었고 숨이 차 걷기도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1954년 2월 노고산 산동면에서 피체될 때는 몸무게가 40kg이 되지 않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습니다.

선생님은 1958년 12월 24일 3년의 징역을 살고 출소하여 1961년 빨치산 출신인 최장렬 선생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이듬해 아들을 낳고 1966년 곡성군 옥과고등학교 국사 선생으로 일하게 되면서 선생의 삶도 잠깐의 평온을 얻게 됩니다. 이때 가르치던 학생들이 각종 경연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 교사로서도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1983년 아들이 기관지 천식으로 곁을 떠난 이후로 선생은 가르치던 일도 그만두고 마른 낙엽처럼 메말라갔습니다.

나주 남평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면서 천식에 퇴행성 관절염 등으로 약을 달고 살면서도 접을 수 없는 단 하나 꿈, 고향가는 길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굽어진 허리를 유모차에 의지하며 1만원의 후원금을 납부하러 남평우체국 창구를 찾아 작은 정성을 보태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90평생, 삶이 그리 즐거웠을 때가 많지 않았다는 이두화 선생님. 그리 여리고 연약한 몸으로 어찌 그 힘든 삶을 다 살아내셨습니까?

공부를 좋아하고 성적도 뛰어난 여대생, 몸집은 작지만 포부만은 당찬 통일일꾼으로 잘 성장하던 스무살 학생이 홀홀 단신 남에 떨어져, 70여 년을 갇힌 채 얼마나 고단하셨습니까?

소름끼치고 잔인한 이 야만의 시대는 끝나야합니다. 가족과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2차 송환 희망자들에게 산목숨으로 자연사 할 때까지 고문하고 있는 이 나라가 정상적인 나라입니까?

인간의 모습을 하고도 인간의 삶을 꿈꿀 수 없게하고, 8천억대의 손해를 볼 지언정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몇푼을 올려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 천박한 땅에서 고향땅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는 작은 바램마저 철저히 외면하는 이 야만의 시대, 분단의 시대는 끝장내야합니다.

이두화 선생님, 이제는 산생활의 아픔도, 동료들의 죽음을 확인해야 했던 감옥에서의 고통도 내려놓고 편히 쉬십시오. 선생님 평생 못다 이룬 송환의 꿈은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왕래의 길을 트고 통일을 앞당기겠습니다.

선생님, 통일조국에서 영면하십시오.

2022. 7. 26.

(사)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사진제공-양심수후원회]
추도식 참가자들이 이두화 선생의 영전 앞에서 조국통일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사진제공-양심수후원회]

출처 : 통일뉴스(http://www.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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