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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만 있었네!

2016.11.13 20:56

안병길 조회 수:7723


지난 달 1016일 노수희 범민족 남측본부 부의장님과 함께 우도에 갔습니다. 우도가 고향이었던 고성화 선생의 묘지에 가보고 싶다 하시기에 동행했습니다. 고성화 선생은 1916년 우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민족의 고난과 함께 걸으시어 그가 남긴 회상기 통일의 한길에서를 읽으면 그가 걸으셨던 길이 민족의 현대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노수희 부의장님이 감옥에 계실 적 고선생께서 돌아가시어 옥에서 잠을 못 이루셨답니다. 제주는 섬 전체가 살아있는 역사이지요. 삼별초에서부터 일제항일운동, 43까지, 삼별초가 몽고와 항쟁하다 제주에서 끝났다는 사실은 재작년 강정 생명 평화 대행진참가 때 알았습니다. ‘항파두리삼별초가 성을 쌓고 항쟁을 하던 곳에서 하룻밤 머물 때 알았습니다.

우도는 해녀들의 항일이 거셌고, 기념비 앞에 서있는데 동네 할망이 자신의 부모였다며 관심가지고 말을 건네십니다. 관광객 많을 때는 3천명이라지만 그 누가 있어 항일의 아픔에 관심을 갖을까. 일제 강점기 제주는 섬 전체가 일제국군대의 군사기지였습니다. 우도봉에 올라 검벌레쪽으로 내려오니 거기에도 일군이 조선의 제주시민을 강제동원 강제노력으로 뚫어 놓은 굴이 있습니다. 유사시 경비행기나 고속정을 숨겨두었다가 곧바로 바다로 나가 자살하는 가미가제 특공대를 위한 토굴, 송악에도 십 여 군데 있습니다. 우도성당 선교사와 털보(박종준)의 후덕한 품에 이틀 밤 자고, 해와 달 그리고 섬의 주인장 김광석님께서 흔쾌히 전 한 장, 돔 튀김 한마리를 마련하고, 묘지까지 안내해주어 고성화 선생 묘에 가니 노 부의장께서 대성통곡하십니다. 같이 금강산 갔을 때, 고 선생께서 버스에 내리자마자 엎드려 통곡하셨다는 말씀과 함께, 그라지요. 한민족이 두 동강 난 채로 70년 세월이니 통곡하지 않으면 민족의 양심이 아니지요. 3일 째 제주 범민련 식구 김남훈님이 성산항까지 마중 나와 시내로 갔습니다. 그 곳 식구들과 저녁 환담을 나누고 강정으로 갔습니다. 제주에 전국 노점상 연합회꾸리러 왔다가 공항봉쇄, 여객 터미널 봉쇄에도 어느 선장님의 도움으로 군산을 거쳐 서울에 왔었다는 경험담과 그곳 식구들에게 북쪽 경험담 잠깐 나누었습니다. 강정마을에는 해군기지 투쟁에 함께 하시기도 했었다며 강정에 가니 거리의 신부 문정현 신부님이 화들짝 놀라십니다. 옥에 갇혀 있을 때, 강정지키느라 면회 못 가 미안타는 말씀과 깊은 포옹을 나누시고 신부님과 저녁을 나누었습니다. 신부님 말씀!

교회가 걸레야! 다 망하는데 교회는 안 망해!”

오늘의 교회가 하느님의 정의를 잃었고, 예수의 가르침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오직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현실의 삶을 외면하는데 대한 질타시겠지. 당시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설자리가 없던 암하렛츠(흩어진 사람들) 창녀, 죄인, 병든 자, 정신병자들과 어울리며 곁을 지켰던 예수. 오늘의 기독교는 그 예수는 무덤에 묻고 오로지 가진 자의 편에서 배부르게 살아가는 목사, 신부, 그 교인들......

강정에서 김영태를 만나 대정읍으로 갔습니다. 김영태님은 제주에 잠시 머물려다 16년째 살고 있답니다. 노래 부르는 가수인 그니에게 CD한 장 선물 받고 대정에 있는 안뜨르 비행장으로 가는데 백조일손묘지를 먼저 안내합니다. 언젠가 왔었던 이 곳, 알뜨르 비행장은 대만과 중국을 폭격하기 위한 일본군의 전초기지인데 격납고가 십 여 개 남아있습니다. 그 옆에 섯알오름이 제주 43때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영태님이 챙겨 온 과일과 막걸리 따라 올리고 참배했습니다. 일제가 조선 독립군이나 항일 인사 잡아들이려 만들었던 법 예비검속그 예비검속으로 137명이 학살당한 곳이 섯알오름입니다. 예비검속이란 일제치하인 194155일 제정 조선정치범을 탄압하던 구금형으로, 1백 명이 끌려가며 자기의 자취를 알리려 고무신짝도 벗어 놓았답니다. 고양시 금정굴 학살 때도 그랬다지요. 그렇게 예비 검속으로 재판도 없이 죽여 놓고 비행장 귀퉁이 탄약고 구덩이에 사살해 쌓아두고 시멘트로 봉했었고, 시신 발굴해보니 누가 누구의 뼈인지 구분이 안돼 다 같이 모시고, 학살당한 후손들이 모두가 조상으로 모시고 일손 한 손이 되겠다는 참 뼈아픈 백조일손묘지묘지석을 516 구데타 당시 파괴한 것을 찾아 모아 유리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제물을 챙겨와 고맙다는 내 말에 영태씨는 이곳에 올라올 때마다 늘 그렇게 하고 있어 당연히 마련했단다. 오기 전 문신부님께 섯알오름 말씀드리니 그 곳엔 갈 때 마다 달라.”하십니다. 몇 해 전 우리 가족과 함께 들렀을 때와 신부님 말씀 대로 다르다.’

, 일제국주의의 폭력도 모자라 이승만, 박정희, 박그네 국가의 폭력! 정부는 그 나라 국민을 보호하고 돌보는 게 책무이거늘. 그 국가는 되려 민중들에게 국가 폭력만 돌려주었습니다. 이 땅 남쪽나라! 평화는 오간데 없었고 단 하나 오로지 국가 폭력만 있었네. 내가 백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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